대동여지도 전도를 직접 만들어본 지리학과 학생들 !
작성일 18-08-28 17:12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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작성자안강 조회 56,948회 댓글 0건본문
이 사진들이 보관되어 있을 줄이야 !
이 사진이 지금 제 손에 있게 된 사연을 알려드릴까 합니다.
대동여지도를 구하기 힘들었던 시절이야기입니다.
백두대간 첫마당을 시작하고 얼마 후 김정호 선생의 불후의 작품이라고 배운 대동여지도를 볼 수 없다는 현실에 안타까움이 가득했습니다.
거의 모든 사람들이 1m 정도 크기의 <대동여지전도>를 <대동여지도>로 알고 있던 시절입니다.
일반 서점에서는 구할 수 없었고, 갓 시작한 인터넷 서점 한 곳에서
경희대학교부설 전통문화연구원에서 발행한 <대동여지도>(원도 2/3축소)(백산자료원. 1977)를 겨우 구했습니다.
당시 일반인이 사용하는 스캐너의 품질이 한계가 있었지만, 스캔 후 대동여지도를 전도로 만들어 대동여지도의 규모와 실제 모습을 확인하는
순간 힘들었던 시간들이 보람으로 바뀌었습니다.
얼마 후 지인의 도움을 얻어 축소본의 아쉬움을 달랠 기회가 찾아왔습니다.
이우형 선생님이 복각하여 펴낸 광우당본 <대동여지도>와 <동여도>의 주기를 첨가한 <대동여지도>를 손에 넣게 되었습니다.
두 자료 모두 스캔하여 보관하면서 전도로 만들어 인터넷에 공개하는 작업도 병행하였습니다.
그 당시 많은 분들의 호응으로 몇 개월의 밤샘 작업에 대한 보상을 받은 것 같아 뿌듯했었죠.
그러나 얼마 후 광우당본 자료의 이용과 관련된 관계자분들의 요청에 의해, 인터넷에서 자유로운 다운로드는 더 이상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.
이후에는 이메일로 요청오면 상업적인 용도로 사용할 목적이 없는지 등 저작권 관련 사항을 확인 후 보내드리고는 했습니다.
2002년 가을이었습니다. 자료요청 메일이 왔습니다.
이후 연락처를 알려주고 통화를 했던 것 같습니다. 학과 대표라고 자기 소개를 한 책임감 가득한 목소리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.
미안하게도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네요.
메일로 자료를 보내드리고는 일상의 생활에 빠져 잊고 지냈습니다.
자료요청을 하고 보내드리면 보통 그것으로 추가적인 연락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,
이 학생대표는 고맙게도 이후 진행상황을 가끔 알려주기도 했습니다.
12월의 학술제 때 대동여지도 전도를 만들어 전시해서 많은 이들의 관심과 호응이 있었다고 했습니다.
학생들이 하는 일이라 기특한 마음에 사진을 요청했던 것 같기도 하고 고맙다고 감사메일이 오면서 사진 첨부되어 온 것 같기도 하고....
사진과 함께 가슴 따뜻한 추억이 남게 되었습니다.
여기에 등장하는 분들이 지금은 40세 전후로 사회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할 나이가 되었네요.
시간의 흐름이란 이런 기억을 남기는 편린들이 없으면 망각하기 십상이지요.
지리학을 하고 계시든, 아니면 다른 생활 터전에서 살고 계시든 젊은 시절 <대동여지도>를 만나고, 전도를 만들어 본 기억은 살아가는 내내
고산자 김정호를 생각하게 하는 추억으로 남았으리라 봅니다.
사진 속의 인물에게서 문득 연락이 온다면 어떤 느낌일까 상상해봅니다.
이 사진이 지금 제 손에 있게 된 사연을 알려드릴까 합니다.
대동여지도를 구하기 힘들었던 시절이야기입니다.
백두대간 첫마당을 시작하고 얼마 후 김정호 선생의 불후의 작품이라고 배운 대동여지도를 볼 수 없다는 현실에 안타까움이 가득했습니다.
거의 모든 사람들이 1m 정도 크기의 <대동여지전도>를 <대동여지도>로 알고 있던 시절입니다.
일반 서점에서는 구할 수 없었고, 갓 시작한 인터넷 서점 한 곳에서
경희대학교부설 전통문화연구원에서 발행한 <대동여지도>(원도 2/3축소)(백산자료원. 1977)를 겨우 구했습니다.
당시 일반인이 사용하는 스캐너의 품질이 한계가 있었지만, 스캔 후 대동여지도를 전도로 만들어 대동여지도의 규모와 실제 모습을 확인하는
순간 힘들었던 시간들이 보람으로 바뀌었습니다.
얼마 후 지인의 도움을 얻어 축소본의 아쉬움을 달랠 기회가 찾아왔습니다.
이우형 선생님이 복각하여 펴낸 광우당본 <대동여지도>와 <동여도>의 주기를 첨가한 <대동여지도>를 손에 넣게 되었습니다.
두 자료 모두 스캔하여 보관하면서 전도로 만들어 인터넷에 공개하는 작업도 병행하였습니다.
그 당시 많은 분들의 호응으로 몇 개월의 밤샘 작업에 대한 보상을 받은 것 같아 뿌듯했었죠.
그러나 얼마 후 광우당본 자료의 이용과 관련된 관계자분들의 요청에 의해, 인터넷에서 자유로운 다운로드는 더 이상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.
이후에는 이메일로 요청오면 상업적인 용도로 사용할 목적이 없는지 등 저작권 관련 사항을 확인 후 보내드리고는 했습니다.
2002년 가을이었습니다. 자료요청 메일이 왔습니다.
이후 연락처를 알려주고 통화를 했던 것 같습니다. 학과 대표라고 자기 소개를 한 책임감 가득한 목소리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.
미안하게도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네요.
메일로 자료를 보내드리고는 일상의 생활에 빠져 잊고 지냈습니다.
자료요청을 하고 보내드리면 보통 그것으로 추가적인 연락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,
이 학생대표는 고맙게도 이후 진행상황을 가끔 알려주기도 했습니다.
12월의 학술제 때 대동여지도 전도를 만들어 전시해서 많은 이들의 관심과 호응이 있었다고 했습니다.
학생들이 하는 일이라 기특한 마음에 사진을 요청했던 것 같기도 하고 고맙다고 감사메일이 오면서 사진 첨부되어 온 것 같기도 하고....
사진과 함께 가슴 따뜻한 추억이 남게 되었습니다.
여기에 등장하는 분들이 지금은 40세 전후로 사회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할 나이가 되었네요.
시간의 흐름이란 이런 기억을 남기는 편린들이 없으면 망각하기 십상이지요.
지리학을 하고 계시든, 아니면 다른 생활 터전에서 살고 계시든 젊은 시절 <대동여지도>를 만나고, 전도를 만들어 본 기억은 살아가는 내내
고산자 김정호를 생각하게 하는 추억으로 남았으리라 봅니다.
사진 속의 인물에게서 문득 연락이 온다면 어떤 느낌일까 상상해봅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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